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 인민지원군 (문단 편집) == 여담 == *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매우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서울을 점령했던 중공군이 UN군의 거센 공세와 보급 차질때문에 펑더화이는 서울에서 철수하려고 했는데, 이를 안 김일성이 펑더화이의 사령부까지 찾아와 주먹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61454.html|#]] 이렇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펑더화이는 김일성보다 13살 위이다. 아울러 북한군과 중공군 연합군이 UN군에 의해 포위섬멸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김일성이 북한군을 연락 없이 몰래 철수하였고 이에 분노한 펑더화이에게 뺨을 맞았다는 야사도 있다. * 전후 제방, 건설, 집, 나무 모두 인민지원군이 다했는데 김일성은 정작 심기가 불편하여 공적을 가로채 자국내 전쟁기념관에 13개 공적을 12개는 자국공적으로 한 반면 인민지원군은 1개만 배려했다. 사실 김일성은 인민지원군에게 너무 도움을 받으면 정권에 영향이 미칠까봐 더더욱 거리를 두었다. * 중공군은 보급 차질 문제 외에도 의료 지원도 열악하여 많은 병력을 질병으로 잃었다. 특히 [[유행성 출혈열]]이 중공군 내에서 돌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공산진영에서는 유엔군이 [[세균전]]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5화에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근거가 상당히 부족한 [[음모론]]에 가깝다는게 대부분의 평가. 당장 유엔군도 이런 질병으로 잃은 병력이 상당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묻혔다. 게다가 유행성 출혈열은 원래 한국의 풍토병이다. * 중국측 전몰자들은 1951년 중국 [[선양(도시)|선양]]에 있는 "항미원조열사릉원"에 안장되었다. 중국측은 남한지역에서 작전시 전사자 유해를 수용하지 못하고 철수한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측은 일단 이들을 가매장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파주 [[적군묘지]]로 옮겼고, [[한중관계]]가 좋아진 2000년대에는 간단한 묘비까지 세워 관리해 주었다. 이렇게 가매장되었던 중국전몰자 유해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중국측에 인도하고 있다. 중국 측은 성대한 추도행사를 열고 이들을 항미원조열사릉에 안장하고 있다. * 이와는 별도로 북한 [[신의주]] 맞은편의 중국 단동에는 항미원조기념관(抗美援朝纪念馆)이 세워져서 중국군의 여러 물자 및, 중국측이 노획한 한국군 및 유엔군의 장비를 볼 수 있다. * 중국에서는 [[6.25 전쟁]]을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대대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제국주의 침탈과 내전에 시달리던 국가가 건국 3년만에 세계 최강대국을 상대로 어쨌든 명확한 승패 없이 정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이 좋은 선전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이에 중국에서는 [[6.25 전쟁]]의 중국 인민지원군을 소재로 한 수많은 선전물이 만들어졌고, 반복적으로 교육되어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1956년에 만들어진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ehkeKRlro9A|상간링(上甘嶺, 상감령)]]〉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집권 후 [[중국몽]]과 [[대국굴기]]를 내세우며 중화제국의 부흥을 공공연히 표명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중국 무역 전쟁]]으로 맞서며 미-중간 충돌이 본격화되자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중국 무역 전쟁]]이 발발하자 관영 [[중국 중앙 텔레비전|CCTV]]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ULSP9pLxvig|잉슝얼니(英雄儿女,영웅아녀)]]〉, 〈[[https://www.youtube.com/watch?v=ehkeKRlro9A|상간링(上甘嶺, 상감령)]]〉 등을 긴급 편성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7/2019051702179.html|방영]]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에서 국뽕을 고취시키는 애창곡 중 하나인 '나의 조국(我的祖国)'이 바로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ehkeKRlro9A|상간링(上甘嶺,상감령)]]〉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배우자이자 가수 [[펑리위안]]이 이 노래를 잘 부르기로도 유명했다.] 사실을 왜곡 또는 부풀려서 미화된 여러 전쟁 영웅들[* 상감령 전투 당시에 육탄으로 미군 토치카를 격파했다는 황치광(黄继光, 황계광)이 대표적이다. 이런 전쟁 '영웅'은 한국도 보유하고 있다. 철원전투의 심일이 대표적이다.]도 교과서에 다수 실려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많은 중국측 공식 자료들은 아직도 열람과 이용이 극히 제한적이며, 중국 인민지원군의 전과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어렵게 하고 있다. * 여러 전투들에 관한 한국측 발표자료와 중국측 발표자료의 전과나 사상자 수가 차이가 많은 것이 눈에 띄며, 2~3배 차이는 보통이다. 뿐만 아니라 한중 양국의 전사를 보면 자군의 명백한 패배를 두고도 "비록 물러섰지만,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다시 반격에 나서 상당부분 회복했다"는 식의 [[정신승리]]적인 기술도 많이 눈에 띈다. 가령 상감령 전투는 분명히 유엔군 공세의 실패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측 자료로 작성된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전략적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http://ko.wikipedia.org/wiki/%EC%82%BC%EA%B0%81_%EA%B3%A0%EC%A7%80_%EC%A0%84%ED%88%AC|#]] 마찬가지로 백마고지 전투는 중국 바이두 백과에서는 한국측의 승전주장과 함께 중국측의 무승부 주장도 '''함께 기술'''하고 있다.[[http://baike.baidu.com/link?url=j-rJlbA6Qcy6QTyW_ypnn9NCc_5LHW0x6Sz7TyhXsnmeys57NB0s0q9xEcZdDQfZTwNVe2EeOXT063s-otw4Ba|#]] 사실 이런 문제는 모든 전쟁에서 나타나는 점이므로, 한국과 중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승자는 전과를 부풀리고, 패자는 피해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상을 알려면 양측의 주장을 교차검증을 해봐야 하고, 전투 전후의 상황도 잘 살펴봐야 한다. * 1990년대 이후 [[한중관계]]의 개선과 함께 중공군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당시 한반도에 파견된 중공군은 개인화기/분대 공용화기는 충실했고, 오랜 기간 국공내전으로 단련된 정예부대였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개인화기는 생산 공장이 중일전쟁이나 국공내전 등으로 파괴되는 바람에 주력 소총인 모신나강 이외에도 적지 않은 양의 [[게베어 1898#중국|24식 보총]], 톰슨 기관단총, 아리사카 등 쓸 수 있는 건 몽땅 들고 와야만 했기에 무기가 충실했다는 주장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또한 중공군 3개 대대 병력이 당시 한국군 1개 소대 35명을 뚫지 못하고 좌절된 베티 고지 전투, 중공군이 12개 사단을 동원하여 한국군 5개사단이 지키는 금성을 공략했으나 금성천 북안의 원진지까지만 진출하는데 그친 [[금성 전투]] 등 중공군이 몇몇 전투에서 보였던 모습이 중공군이 정예 병력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례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무장이 충실한 군대라기엔 너무나 심각한 졸전이기 때문이다. 무장이 부실했거나, 병사의 훈련이나 실전경험이 부족했거나, 사기가 낮아 싸우려들지 않았거나, 지휘가 졸렬했거나 혹은 보급의 한계점에 도달했거나 등등 여러 이유가 있어야 상기의 전과가 성립될수 있다. 이는 아무리 중공군이 참전 당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 병력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보급선이 길어지고 남하하는 과정에서 차츰 손실을 입어 실제 전투가 이루어진 당시에는 처음과 달리 무기나 정예 병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모든 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되는 재평가 과정을 거쳐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전사(戰史)로 거듭난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연인원 수백만 명이 동원된 엄청난 규모에 비해서 오랫동안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있으며, 전쟁의 당사자인 남북한 또한 수십 년간 정신승리에 가까운 선전만 해오는 바람에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 2016년에는 중국에서 6.25 전쟁 참전이 정의와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등장하기도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21&aid=0002290365&viewType=pc|#]] 일부는 [[6.25 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을 소련의 강제로 이루어졌고, 중국은 파병국일 뿐이니 전쟁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전쟁범죄를 일으키지 않고 신사적이었다는 주장을 하며 중국 인민지원군을 옹호한다. [[http://archive.is/mXtOL|#]] 물론 중공군이 상대적으로 규율이 잘 지켜진 군대였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와는 별개로 [[베트남전]]의 파병국인 한국이 전쟁책임이 있듯이 중국군도 전쟁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 국공내전을 다룬 중국 영화 [[집결호]]에 주인공이 영화 중반부에 6.25 전쟁에 참가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에 나오는 전투는 한국군의 대표적 패배 중 하나인 [[횡성 전투]]. 상부의 명령을 받고 주인공과 주인공 상관 등이 대한민국 국군으로 위장해 포격에 앞서 유엔군을 관측하러 가는데, 이때 중국어 원문으로 한국군과 한군군 군복을 [[이승만]]군 또는 이승만군복이라 표현하고, 작전 중 우연찮게 마주한 미군이 [[횡성군|강원도 횡성군]]을 계속 중국발음인 '헝청쥰'이라 발음하거나, 주인공이 한국인인 척 하려고 말끝마다 "~~~스미다"를 붙이는 등으로 묘사한 모습이 재미있다. 한국인 입장에선 '이게 뭐야?' 라고 볼 수 있어도 영화가 중국 시각에서 만들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오히려 이게 더 정확한 고증일 수 있다. 한국 영화에서 북한군을 "빨갱이 XX들"이라 하거나, 북한군이 한국군을 칭할 때 '이승만 괴뢰도당' 또는 '미제 승냥이의 앞잡이' 등으로 묘사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것. * 미국의 르포 전문 작가인 데이비드 핼버가 한국전쟁에 대해 다룬 저서인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에 의하면 한국전쟁 중 미군들을 가장 공포에 떨게 했던 것은 바로 중공군의 [[야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한밤중에 아무런 소리도 없이 산을 넘어서 미군의 바로 코앞까지 몰래 진격해오는 중공군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는데, 한 예로 어느 미군 병사가 밤에 담뱃불을 붙이려 라이터를 키자, 그 불빛에 미군 병사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있는 채로 다가온 중공군 병사의 얼굴이 드러나서 미군 병사가 혼비백산을 한 일이 있었다고 할 정도. * 중공군과 정반대 개념으로 대한민국 편을 들어 참전한 화교 출신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국부천대]]가 일어난지 얼마 안 돼서 한반도 내 상당수의 화교들의 국적이 [[중화민국]]이기도 했고 또 강한 반공성향을 띄고 있어 한국군의 편에서 후방지원과 중국어 통역 등을 맡았고 어느정도는 전투부대로 참전해 싸워 중국인들끼리의 전투도 몇 번 있었다 한다. 실제로 [[국립서울현충원]] 외국인 묘소에 화교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위서방(魏緖舫, 웨이쉬팡, 1923~1989)과 강혜림(姜惠林, 장후이린, 1925~1951) 2명이 안장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 내 화교 탄압이 극심해진 1960년대 이후로 화교들이 대부분 귀화하거나 한국을 떠난 데다 기록 자체가 부실해 정보가 많지 않다. * [[방탄소년단]]이 한미관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밴 플리트상을 수여받으면서 수상수감에 한국군과 미군에 감사하다는 멘트를 남겼는데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미제와 맞서싸운 중공군을 모욕하는 것이다"라며 계정 테러를 시도한 바 있다. [[https://ggoorr.net/all/10236825|#]] * [[미국-중국 무역 전쟁]]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중국과 미국 사이가 험악해진 2020년 현재 중국 내부에서는 반미감정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국전쟁 때 중공군에 대한 미화를 진행시키고 있고 여러 다큐멘터리와 영화, 드라마 등이 나오고 있다. * [[마오쩌둥]]이 한국전쟁에 참여한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뒤늦게 알려졌다.[[https://www.yna.co.kr/view/AKR20150622001500083|#]] *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의 해외판 소셜미디어 매체인 협객도(俠客島)가 한국 전쟁으로 인해 수십만이 죽고, 중국을 지켜냈으니 북한에 감사하라 적반하장식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양안관계]]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북한의 고집이라고 비난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9242891|#]] * 인민지원군 전투기가 북한 공군의 [[라운델]]을 달고, 참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55&aid=0000922328|#]] 이는, 소련도 그랬는데 소련 역시 자국군보다는 공군 위주로 보내, 후방에서 지원을 하였다. 그래서 북한 라운델을 달고 참전을 했었다. * 미디어물을 보면, 한국전쟁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 조금 보이는 추세지만 [[중일전쟁]], [[국공내전]]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또한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있었으나 2021년 중국 내에서 영화 [[장진호 전투]]가 크게 흥행하면서 중국 내 인지도가 올라갔다. 속편까지 만들어졌을 정도. * 여담으로 당시 중국에서 교육 등으로 머물던 3천여 명의 북베트남인(베트남 인민군)들 중 가운데 숫자 미상의 인원들이 중국 인민지원군에 종군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오늘 날까지도 베트남 정부에서 정치외교적 이유로 이들에 대한 정확한 규모와 전과, 명단 등에 대해 비공개하고 있다. * 처음부터 [[한국전쟁]]에 개입에 소극적이였다는 [[저우언라이]]의 극히 일부였던 전보[* '''"현재 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조선인 간의 내전이므로 남조선군이 올라오는건 무방하나 미군과 유엔군이 38선 넘으면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가 5쪽의 전문이 공개되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998862?sid=102|#]][[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92936&plink=LINK&cooper=NAVER|#]][[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999041?sid=104|#]] * [[인해전술]] 이미지로 인해 뭔가 저렴하면서 떼거지로 형성되있는 무언가를, 중공군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